조선일보와 국민의힘, ‘대통령이 나서라’는 저의

박태환 승인 2020.11.26 05:50 | 최종 수정 2020.11.29 05:58 의견 0

“윤석열, 한밤 분노의 클릭...인터넷으로 ‘직무정지 효력 중단’ 신청”

26일 새벽에 내걸린 조선일보 타이틀 기사 제목이다. 정확하게 26일 새벽 1시 29분에 올라온 기사이다.

기사의 서두는 이렇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5일 추미애 법무장관의 직무집행 정지 명령에 따라 대검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날 서초동 자택에 머물며 변호인 선임 준비 등을 한 윤 총장은 이날 오후 10시30분쯤 인터넷 전자소송 접수를 통해 서울행정법원에 직무정지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서초동 자택에서 전날 오후 10시 30분에 인터넷으로 직무정지 집행정지 신청을 했는데, 불과 두 시간여 만에 조선일보가 기사화한 것이다. 제목에다간 ‘한밤 분노의 클릭’ 어쩌고 어설프게 띄워주면서.

궁금하다.

윤 총장은 사무실도 아니고 서초동 자택에서 소송 신청을 했는데, 조선일보는 어떤 방식의 취재를 통해 그걸 알았을까. 그것도 기자들이 활동하는 주간도 아니고 심야 시간대인데.

추미애 장관이 24일자로 윤석열 총장에 대해 직무정지를 시킨 사유 중에 하나는 ‘부적절한 언론사 사주 접촉’이다. 조선일보 사주와 윤석열 총장은 거나하게 취해 호형호제하면서 ‘상호방위조약’이라도 체결한 걸까. "나는 너를 지킨다. 너도 나를 지켜다오."

조선일보는 허구헌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다. 아니, 맨날 비판한다. 모니터를 해본 결과, 올해 창간기념일에만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가 없었다.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축사를 보내온 날이었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부터 또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혁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수장이 허구헌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보수언론 사주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직위해제감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더 이상 秋 뒤에 숨지 말고 文은 직접 尹 경질하고 책임지라”

같은 날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이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우 따위는 없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과 동격으로 ‘文’ 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내용인즉, 추미애 장관을 대신해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는 것이다. 작금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하고 있다. 교묘하다. 대통령을 진흙탕 싸움에 끌여들여 검찰개혁을 훼방 놓겠다는 저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장관 사태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범죄자를 두둔하는 대통령”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25일자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참여연대마저 "추-윤 갈등에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사실이라면 개혁성향의 지식인집단 답지 않게 어리석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6월에도 지금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공수처 신설과 대검 중수부 해체 문제로 법무부와 검찰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대립을 보다 못해 다혈질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후 검찰 개혁의 본질은 훼손돼 공수처 신설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그랬다간 법무부와 검찰의 싸움이 아니라 청와대와 검찰의 싸움으로 변질된다. 추미애 장관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추구하는 검찰개혁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지금 조선일보가 대통령을 진흙탕 싸움에 끌어들이려는 목적은 ‘윤석열 구하기’가 우선이지만, 국민의힘은 그게 다가 아니다. 무엇보다 공수처 신설을 훼방놓겠다는 저의를 내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배은망덕 윤석열' 처리 문제는 강단있는 추미애 장관한테 전적으로 일임하고, 여당을 다그쳐 공수처 신설에 매진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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