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청소근로자 사망사건에 대한 단상

'현대차' 대신 '울산 북구에 있는 자동차 제조공장'으로 표기한 지역언론
1시간 여만에 사라진 경향신문의 현대차 사망사고 1신 기사
현대차는 협력사 청소근로자들의 '샛문' 이용을 몰랐나

박태환 승인 2021.01.06 18:14 | 최종 수정 2021.02.04 07:23 의견 0

울산 북구에 있는 자동차 제조공장

“울산 북구에 있는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청소 담당 근로자가 무단으로 고위험 무인공정 시설에 들어가 바닥 청소를 하다가 프레스 기계에 끼여 숨졌다.”

지역 언론의 제 1신은 이러했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먼저 ‘울산 북구에 있는 자동차 제조공장이라니? 혹시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을 잘못 표기한 게 아닐까.’ 또 하나의 의문은 '청소하는 사람이 제일 하기 싫은 게 청손데, 왜 위험한 지역까지 무단으로 들어가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는 건가.'

몇 시간 뒤, 중앙 언론에 의해 점차 드러나는 사실 관계는 이러했다.

'울산 북구에 있는 자동차 제조공장’은 ‘현대자동차’를 의미했다. 변을 당한 협력업체 근로자는 원청 작업장의 위험지역에 무단출입을 한 게 아니라 “본사에서 임원이 방문한다”는 회사의 의전용 작업지시로 홀로 위험지역에 들어가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사라진 경향신문 기사

“현대차에서 사망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국내 뉴스 전체를 검색해 보았다. 경향신문이 가장 빠르고 정확해 보였다. 현대차 사측은 물론 울산지역 노동계를 취재한 장문의 기사가 올라왔다. ▲정상근무가 아닌 의전용 근무 ▲작업장 고위험설비 계속가동 ▲2인1조 근무지침 위반 등을 지적한 것으로 기억한다.

건데, 1시간쯤 후 기사 작성시 참조를 하기 위해 다시 접속을 하니, 기사가 사라져 버렸다. 제목은 그대로 살아있는데, 기사가 통째로 증발한 것이다. 대신 서너 문장의 연합뉴스를 인용한 기사로 채워놓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국내언론사 중 독자들이 신뢰를 보내는 몇 안되는 언론사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더구나 짧은 기사의 한 가운데에는 큼지막한 현대차 광고를 실어놓고 있었다.

현대차는 청소근로자들의 '샛문' 이용을 몰랐나

금속노조가 현대차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시위를 벌이자 사측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사고 공정은 안전펜스와 안전 플러그가 설치돼 있어 정상적으로 출입할 경우 설비가 자동으로 중단되게 돼 있다. 현재 정확한 사고 발생 경위를 조사 중이며,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조성과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

언뜻 사과하는 듯 보이나 그렇지가 않다. 사고발생 경위를 안전출입문으로 정상 출입을 하지 않은 청소담당 협력사 근로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실제 사고 현장에는 안전펜스와 안전 플러그가 설치된 출입구가 있었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한 협력사 근로자는 왜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은 걸까.

“동력을 차단한다는 말은 라인을 세운다는 뜻인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 작업 때문에 라인을 세운 적 없습니다. 1분 50초마다 차가 한 대씩 생산되는데, 우리가 보수한다고 라인을 20분 멈추면 그 손해를 누가 어떻게 감당합니까. 사측에 라인 정지 요청은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현대차 협력사 청소담당 관계자의 주장이다. 금속노조가 현장을 방문해 찍은 사진을 보면, 청소작업자들이 출입하는 폭 40㎝ 크기의 샛문은 따로 있었다. 안전출입문은 무인공정 정기점검이나 기기 정비시 원청 직원들이 사용을 했고, 청소를 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던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감히 사용할 엄두도 못내고 쪽문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현재 현대차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은 경찰과 고용노동부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사측이 법적인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A위험등급 고위험 작업장에서 프레스 작동을 중지 시키지 않은 것은 작업자 또는 작업지시를 내린 협력사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2인1조 근무지침을 어긴 것 또한 협력사 경영진의 잘못이지 사측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현대차는 법적인 책임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협력사 근로자의 위험을 방치한 도의적인 책임은 가볍지가 않다. 현대차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다. 현대차의 안전 불감증 실태가 이러한데, 열악한 환경의 여타 중소기업은 어떻겠는가. 보다 강력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번 현대차 청소근로자 사망사건이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홀로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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