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도보다리 회담과 발전소 USB

박태환 승인 2021.02.02 12:10 | 최종 수정 2021.02.05 06:56 의견 0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이다. 특히 이런 이적행위 국기문란 프로젝트가 일부 공무원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에서 극비리에 추진돼 온 정황이 드러났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이다. 근거로는 월성1호기 조기패쇄 관련 감사를 앞둔 산업부 원전담당 공무원들이 파기한 문서 중에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란 문서가 여럿 있었고, 작성 시기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보다 구체적으로 “2018년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발전소 USB’를 몰래 건넸다”고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근거로는 당시 도보다리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입모양에서 ‘발전소’라고 말하는 것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기로 밀약을 했다는 주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란 걸까. 우리 국민 몰래,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미국 몰래 지어주기로 했다는 걸까. 그래야 김종인 위원장의 주장대로 ‘이적행위’가 되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몰래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주장의 모순은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단 1기의 원전을 짓는다 하더라도 원전 설계를 하고 부지를 정하는 등의 사전 단계를 빼더라도 공사기간만 최소 10년이 걸린다. 단임인 문재인 정부가 아닌 차기 정부, 혹은 공사기간이 연장된다면 그 다음 정부나 되어서야 완공될 수가 있다.

둘째, 미국 몰래 북한에 원전 공사를 한다는 자체가 군사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 위성은 한반도를 돌며 북한지역의 군사동향을 시시각각 면밀히 살피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발사대 이동 등 조그만 움직임도 이내 포착을 해낸다. 건데 어떻게 최소 10년씩이나 걸리는 원전 공사를 미국 몰래 극비리에 지어줄 수 있다는 건가.

셋째,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원자로 기초콘크리트 타설공사 등 건설 사업이 한동안 진행된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구 ‘한국형 경수로’ 핵발전소도 그 원천 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다. 미국의 동의나 협력이 없이는 한국 정부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넷째, 김종인 위원장이 근거로 삼는 산업부의 폐기 문서를 보면 “동 보고서는 향후 북한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이란 표기를 해놓았다. 즉, 향후 북·미간 비핵화협상이 진전되어 남북경협이 활성화 될 경우를 대비해 작성한 아이디어 차원의 문서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나 보수언론은 ‘도보다리 USB’ 운운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마치 스파이 행세를 한 것마냥 여론을 몰아가는데, ‘USB’ 이야기는 이미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밝힌 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4월 3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김 위원장에게 신경제 구상을 담은 책자와 PT(프레젠테이션) 영상을 정상회담 때 건네줬다"며 "그 영상 속에 발전소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공개한 내용이다.

그리고 신경제 구상을 담은 USB는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때 몰래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넨 것이 아니라 ‘판문점 평화의집 회담’때 공식적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에 전달한 USB에는 원전에 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구시대 유물정치’라며 분노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을 향해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 국민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너나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판국에 보수 야당을 대표하는 김종인 위원장이 ‘대통령 이적행위’ 운운하며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커다란 우를 범하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대북문제에 관한한 미국 허락 없이는 금강산 관광은 물론 개성공단도 재가동을 하지 못하는 난감한 우리 처지이다. 건데 무슨 핵발전소를 극비리에 지어주는 이적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작권자 ⓒ 시사인 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