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펠로시 안 만나나 못 만나나

박태환 승인 2022.08.04 12:14 | 최종 수정 2022.08.04 19:34 의견 0

지금 서울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우리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며 만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멀리 지방으로 휴가를 간 것도 아닙니다. 어제는 보란 듯이 대학로에서 연극 관람 후 배우들과 사진을 찍어 공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휴가 중이라서 서울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로 찾아온 낸시 펠로시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핑계로 보입니다.

휴가 때문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혹자들은 펠로시가 윤 대통령과 만나는 것을 기피한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 의회 수장으로서 윤 대통령의 검찰 편중 인사 등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입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히지만,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평소 어지간히 '윤석열 부부'를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사실이 아닌 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겠습니다.

그럼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는 것은 중국 때문일까요.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를 만나 중국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요. 이게 사실이라면 저는 윤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갈길이 먼 윤석열 정부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 대통령실에서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다”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펠로시가 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을 기피한 것도 아니고, 우리 윤 대통령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펠로시를 만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면, 그 외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 6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요청으로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준석 대표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 비용문제로 당내 친윤계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죠.

지금 낸시 펠로시의 아시아 방문이 유사한 형태로 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펠로시의 아시아 우방국 순방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이든은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극구 말렸습니다. 백악관 뿐만 아니라 전쟁을 우려한 펜타콘 관계자들까지 나서서 펠로시를 설득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펠로시는 기어이 대만 방문을 강행했고, 중국은 지금 대만 포위 공격을 위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난리도 아닙니다. 시진핑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중국 외교부는 심야에 미국대사를 불러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펠로시가 탄 비행기가 대만으로 접근했을 때는 전투기를 띄워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겁니다. 추정이지만, 미국 바이든 정부로부터 물밑으로 협조를 구하는 메시지를 받았을 겁니다. 윤 대통령은 휴가라고 내빼고, 박진 외교부장관은 회의 있다고 내빼고, 우리 정부 관계자는 거짓말같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 한 사람도 펠로시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당부나 협조 요청 유무와 상관없이, 윤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고 국익에 부합되는 합리적 결정이었습니다.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의 61%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주변국 우리가 자발적으로 끼어들 필요는 없습니다.

난 또 김건희 씨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하얀 장갑을 끼고 세계적 거물인 낸시 펠로시와 사진을 찍고 싶어서 남편을 보챌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든지, 펠로시가 어서 빨리 한국을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인 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