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윤석열의 판박이 위기대응

박태환 승인 2022.08.13 10:43 | 최종 수정 2022.08.13 18:13 의견 0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세월호가 전복되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300여명의 학생들이 죽어갈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집무실에 없었다. 논란이 일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계신 곳이 집무실이다.”

학생들이 배 안 선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전원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날 오후 5시 15분. 중대본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 “학생들이 다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자, 박 전 대통령은 "해경이 구조 과정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2022년 8월 8일 오후 7시 30분. 집중 폭우로 서울이 물바다가 되어 도처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서초구 자택으로 귀가를 했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계신 곳이 상황실이다.”

다음날인 8월 9일 오전 11시 40분. 노란색 민방위 차림을 하고 3명의 가족이 침수로 사망한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은 윤 대통령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무시다 그랬구나...”

사망한 일가족 3명은 윤 대통령의 발언처럼 잠을 자다 미처 대피를 못해 사망한 게 아니라 방안으로 물이 밀려들자 무려 15차례나 구조 요청을 했으나 구조가 늦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자, 오세훈 시장은 느닷없이 반지하방을 없애겠다고 발표를 했다. 세월호 사건 때 정부는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없애겠다고 발표를 했고, 박 전 대통령은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이 계신 곳이 집무실이라고 주장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세월호 침몰 책임을 해경에 전가하고 해체를 선언한 박 전 대통령의 말로는 어떠했던가. 수학여행은 재개되고 해경은 존립을 유지했지만 둘은 수인복을 입어야 했다.

취임한지 채 100일이 되지 않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이런 비판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차를 돌려서 상황실로 가야 한다”고 직언하는 참모가 없는 것은 명백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예컨대 국무회의에 참석한 교육부 차관이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과 관련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등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자 “다시 한번 그런 얘기하면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고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는 실정이니 누가 곧은 말을 하겠는가.

또 들리는 풍문으로는, 인수위 시절부터 김건희 씨 관련 발언만 하면 화를 내는 것을 넘어 소리소문 없이 짤라 버리고, 대통령실이나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 계약 관련 뉴스가 보도되니 정보 유출자를 색출한다고 부속실 관계자들의 휴대폰 검색까지 하는 실정이란다.

따라서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느라 "상황실로 가야 한다" 직언은 하지 못하고 “밤중에 헬기가 뜨면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 한다”거나 “대통령이 행차하면 교통 통제 때문에 복구 작업에 지장을 준다” 등의 구질한 변명을 늘어놓는 참모만 득실한 것은 다름아닌 대통령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대통령 부부가 빵을 사러 가거나 영화 관람한다고 교통 통제를 하면 불편해 할 국민은 있겠으나, 폭우 침수사태로 상황실로 향하는 대통령을 탓할 국민은 없다. 최근 대통령실을 개편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대통령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 한 참모진 개편은 의미가 없고 국정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인 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