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장은 무얼 했을까

박태환 승인 2023.08.13 10:19 | 최종 수정 2023.08.17 23:21 의견 0

영화 'Wonder (2017)'는 무개념 부모를 상대하는 교장 선생님의 차분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외국 영화를 보면 교장이 문제 학생을 교장실로 불러 꾸짖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 미국의 경우, 교장은 문제 행동을 보인 학생들의 지도와 상담 등 담임교사 혹은 학생부장교사의 역할까지도 적극적으로 해 교사를 돕고,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힘쓴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지난 7월 18일 숨진 교사(23세)는 지난해부터 학부모 민원과 관련해 학교 측에 10차례 상담 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7월에는 '연필 사건'으로 학부모가 개인 전화로 항의를 계속하자 두려움에 떨며 학교 측에 3차례나 상담 요청을 했다. 이때 학교 측은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을까. 어이가 없게도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했단다.

건데,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는 숨진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추정컨대 학교 관계자가 일러줬을 공산이 크다. 학교 측은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게 직접 나서 설득을 하기보다 무책임하게 숨진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숨진 교사에게는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한 셈이 된다. 숨진 교사는 이게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의 부화만 치밀게 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낙심했을 것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한 학부모는 "교장이 반 대표 학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안 했다"며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가 '우리한테 화살이 쏟아져서 힘들다'고 하자, 교장이 교육청 조사관에게 '들으셨죠? 이거 좀 잘 챙겨주세요' 하며 따로 부탁하더라"라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교사의 죽음에 관한 의혹을 밝히는 것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학교측은 학부모의 편을 들어 입단속에만 급급했다는 소리이다.

지난 2021년 6월과 12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이었던 교사 2명이 잇따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5학년 3반 담임교사였던 김은지(23세) 씨와 5학년 4반 담임교사 이영승(25세) 씨는 해당 학교가 첫 발령지인 4~5년차의 저경력 교사들이었다. 당시 학교 측은 교육청에 사망 원인을 '단순 추락 사고'라고 보고했단다. 아이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허위' 보고를 한 셈이다. 이 학교 교장은 교사들의 고충 해결보다 자신의 안위만 걱정했던 것이다.

지금 교사들이 검은 옷을 입고 '교사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땡볕 더위에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교사의 교육할 권리와 교육활동 보호를 위해 아동복지법, 아동학대 처벌법,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여기에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법이 있다. 교장이 되기 위해선 28년간 교사 근무를 해야 하는 필수조항을 폐지하고 대체 법안을 강구해야 한다. 반드시 교사 생활을 오래 해야 훌륭한 교장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무 경력 중시가 아닌 성품 인성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자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하는 교장은 필요 없다. 교사가 두 명이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도 교육청에 '단순 추락 사고'라고 보고하는 교장도 필요 없다.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교사를 대신해 호되게 꾸짖는 교장이 필요하다. 학부모가 악성 민원을 제기하면 교사를 대신해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교장이 필요하다. 교장 자격이 있는 자만 교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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