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의 18일차 단식을 보며

박태환 승인 2023.09.17 12:00 | 최종 수정 2023.09.18 08:48 의견 0
지난 15일 16일차 단식 투쟁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초췌한 모습


1983년 5월 18일, 신민당 총재 YS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세 번째 해를 맞아 독재에 항거하는 뜻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는 구속 인사의 전원 석방과 해금, 해직 교수 및 근로자와 제적 학생의 복직, 복교, 복권, 언론의 자유, 개헌 및 국보위 제정 법률의 개폐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이어갔다. 전두환 정부는 5월 25일 YS를 서울대병원 특실에 강제 입원시켰고 링거 치료받게 하였으나 6월 9일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안기부 직원들이 찾아와서 병실 앞에서 불고기를 구워 먹는 등의 유치한 짓을 일삼았는데 단식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지하기 위해 정보기관에 걸맞지 않은 일까지 저지른 것이다.

YS가 워낙 강경하게 단식 투쟁을 지속한 데다 이대로는 민심이 동요할 우려가 있다는 건의로 결국 전두환이 YS의 가택 연금을 전격적으로 풀어주기로 했다. 이에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이 병실에 찾아와 이 사실을 알리고 단식을 풀 것을 권유했는데 YS는 죽기로 결심하고 협상은 없다고 거부했으나 김수환 추기경이 찾아와서 설득하면서 결국 단식 투쟁을 멈췄다. YS의 단식투쟁은 민주화 투쟁에 불을 붙여 결국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상징적인 단식투쟁으로 평가받는다.

1990년 10월 8일, 평민당 총재 DJ는 거대여당 민자당에 맞서 내각제 포기와 지자제 실시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88년 13대 총선은 DJ의 평민당과 YS의 민주당, 그리고 JP의 공화당 등 야3당의 승리를 불러왔다. 집권 민정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힘에 밀려 지자제 실시를 약속했지만 90년 1월 3당 합당을 통해 공룡 몸집의 민자당으로 탄생하며 합의를 번복했고, 이에 소수야당으로 전락한 DJ는 단식으로 맞선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한 DJ의 단식은 13일간 계속됐다. 단식 4일째인 10월 11일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평민당사를 방문해 김대중 총재를 위로하며 단식 중단을 요청했지만 합의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15일 평민당 의원들은 의총에서 동조 단식을 결의했고 건강이 악화된 DJ는 결국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됐다. 10월 20일, 여야합의로 요구사항이 타결되면서 DJ는 단식을 풀었다. 내각제는 물 건너갔고 이듬해 기초의회에 이어 95년 전면적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됐다.

14일 부산 기장시장을 방문한 김건희 씨

2023년 8월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정쇄신을 위한 내각 총사퇴와 일본 오염처리수 해양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그러자 여권에서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용 단식 쇼라고 주장하며 후안무치에 대한 괘씸죄가 추가돼야 한다고 비아양거렸다. 또 이들은 이 대표가 단식 중인 텐트의 100m 거리에서 전복 등 수산물 시식회를 열기로 했다가 여론 악화가 우려되자 수산물 소비 촉진 행사로 바꾸어 열기도 했다.

이 와중에 검찰은 두 차례나 이 대표를 소환해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이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와 도지사 방북비 300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이어나갔고,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태세다. 또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이 대표가 일본 오염수 처리 반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한 거부 의사로 부산 수산 시장을 돌며 회 먹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김건희 씨는 마치 이 대표의 단식을 조롱하듯 "가자미 회가 참 고소하다"며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오늘도 이 대표는 18일차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야당 대표로선 사실상 최장 기간 단식 기록이다. YS가 23일간 단식을 했지만 8일간의 자택 농성 이후 병원에 입원해 링거를 맞으며 보낸 기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요 며칠새 이 대표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의료진이 위험한 상황이라며 누차 입원을 권고하고 있으나 여전히 단식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이 대표가 18일간이나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음에도 정부 여당에서는 누구 하나 찾아와 중단을 요청하는 이가 없다. 조롱 일색의 여권도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고 건강이 악화되자 다소 긴장하는 모습이긴 하다. 한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느라 직접 방문하는 대신 SNS로 단식 중단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옹고집이 정면으로 맞부딪친 형국이다. 판단은 2024년 4월 10일 총선에서 국민이 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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