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위원장의 사퇴를 보며

박태환 승인 2024.04.12 10:35 | 최종 수정 2024.04.13 15:10 의견 0
한동훈 / 연합뉴스

지난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여당은 참패를 했다. 겨우 개헌저지선을 넘긴 108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그 원인은 누구보다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있다. 사례를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지적하기도 버거울 정도다. 건데 윤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시켜 "국민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몇 문장 안되는 입장 표명을 하는데 그쳤다.

진정성이 결여됐다. 정말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 쇄신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부인 김건희 씨 관련 비리 수사를 즉각 착수토록 하고, 채상병 사망사건도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혀야 했다. 왜냐면, 이 두 가지 문제가 총선 참패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가 변하지 않는다면 변하게 할 수밖에 없다. 192석의 거대 야권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김건희 씨 비리와 채상병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에 착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거부권 무력화 방지를 위해 108석의 국민의힘 의원 중 8명이 이탈하지 않도록 온갖 술수를 동원할 것이다.

국민의힘을 이끌어온 한동훈은 이 짓을 하기 싫었다. 한동훈은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나서서 전국을 돌며 민심이반을 절감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한동훈은 명백히 민심에 역행하는 특검 거부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이게 우선적 사퇴 이유로 판단된다.

또 하나, 이제 한동훈은 윤석열의 수하가 아니다. 정치적 동반자 관계도 아니다. 김건희 씨 비리 해결 방안 간극으로 한동훈과 윤석열은 정적 관계가 되었다. 윤석열과 20여 년간 검찰에서 함께 근무해온 한동훈은 그의 인성을 너무 잘 안다. 윤석열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갈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는 걸 알고, 미리 선수를 쳐서 사퇴를 해버린 것이다.

한동훈은 사퇴선언 기자회견장에서 "선거 패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자신에게 있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윤석열은 기뻐했을까. 아니다, 속으로 부글부글 했을 것이다. 이는 천재형 한동훈의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발언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번 총선의 책임은 99% 윤석열에게 있다. 모든 국민이 다 안다. 그럼에도 그는 흔쾌하게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 후, 윤석열에게 '엿을 먹이고' 퇴장을 해버린 것이다. 졸렬한 윤석열과 달리 자신은 '대인'이라는 인상을 남긴 채.

그는 "정치인의 길을 계속 가겠다"고 말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오는 6월에 실시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자의반타의반 출마를 할 것이고, 이후 차기 대선을 향한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다. 진보 야당의 공세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심어놓은 당내 인사들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출마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6월 이전 두 달 동안 그는 휴양지의 어느 방 안에서 느긋하게 TV를 보며, 이재명과 조국의 특검 공세에 시달리는 윤석열의 수난을 묵묵히 지켜보며 민심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의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 '그가 민생토론회라는 명분으로 전국을 돌며 공약을 남발하는 바람에 정작 나는 어딜 가도 야당 비판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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