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해임 감상법

박태환 승인 2023.01.16 11:09 | 최종 수정 2023.02.01 11:47 의견 0


나경원은 만 29세이던 1992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서교동의 고시원에서 서울대 법대 동기, 선배들과 함께 하숙하며 시험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때 고시반 대장 노릇을 하던 선배 윤석열은 ‘경원아’라고 스스럼없이 불렀고, 나경원은 ‘오빠’라 부르며 따랐단다.

윤석열이 나경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사표를 제출했는데 해임을 해버리다니, 평소 두 사람의 관계로 보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윤석열은 나경원에게 왜 이런 수모를 안겨준 걸까.

정치 초년생인 윤석열에게는 오는 3월 8일에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계파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기존 당 대표인 이준석을 성 접대 의혹 등을 제기해 쫓아내 버리고, 민심에서 앞서는 유승민을 견제코자 100% 당심으로 대표를 뽑기로 룰 개정까지 했다.

만만한 바지사장을 하나 골라 당 대표로 뽑은 뒤 윤핵관을 사무총장으로 앉혀 내년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른바 ‘김장연대’이다. 김기현을 대표로 당선시키고 장제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한다는 포석이다.

여기에 또 변수가 발생했다. 당심에서 나경원이 김기현을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은 나경원에게 당 대표에 출마하지 말라는 저의로 장관급 직책을 두 개나 안겨주었다. 하지만 나경원은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는 등 출마를 강행할 태세였던 것이다.

자연 이런 의문이 생긴다. 평소 윤석열은 서울대 법대 동기인 나경원 부부와 수시로 식사를 같이할 정도로 친숙한 사이이다. 나경원의 남편 김재호 부장판사는 윤석열의 장모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의 의혹마저 자초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왜 김기현 대신 나경원을 선택하지 않은 걸까.

알려진바 김건희는 윤석열이 당선인 시절 처음 나경원을 마주했다. 이날 부부동반 식사 자리에서 김건희는 서울대 법대 동문 세 명 사이에서 상당한 열등감을 느꼈단다. 사학재단 금수저 집안 출신의 도도한 나경원이 김건희를 별로 의식하지 않은 채 평소대로 윤석열을 ‘오빠’처럼 스스럼없이 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나경원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지 못한 걸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후 나경원은 대통령 윤석열이 지지율 20%대에서 허덕일때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근 김건희 여사 팬클럽이 아주 정말 눈에 거슬린다"라며 "김건희 여사 문제들이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지적이 된다"는 등의 직설적 비판을 가했다.

이 결과물이 작금 나경원의 해임으로 볼 수 있다. 나경원은 김건희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당 대표 후보군에서 제외되고, 출마 강행 움직임을 보이자 해임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다. 나경원의 잘못이라면 이 나라의 실세는 윤석열보다 김건희라는 것을 일찍 자각못한 우둔함으로 볼 수 있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도 숲은 그 자리를 지키고,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윤핵관과 싸우고 있는데, 대상은 애꿎은 하수인이 아닌 김건희여야 의연하다. 정작 대통령 부부는 겨누지 못한 채 참모 등 주변 탓만 하는 나경원의 처세를 보자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이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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