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갑질' 엄마는 경찰 수사관, 아빠는 검찰 수사관

박태환 승인 2023.08.23 06:42 | 최종 수정 2023.08.26 11:34 의견 0
이 글을 쓰기 위한 근거 자료로 8월 22일 방영한 피디수첩 <지금 우리 학교는 : 어느 초임 교사의 죽음>편 방송 화면을 갈무리한 사진입니다.

어느덧 서이초 박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떠난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겨우 24살 꽃다운 나이에 학부모의 갑질에 지쳐 교실 교보재 준비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선생님이 맡은 1학년 6반 학급의 학생 수는 26명이었다. 그중 최소 10명의 학부모가 숨진 박 선생님에게 항의성 문자 등으로 힘들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별 내용도 아니었다. "짝궁을 불편해 한다", "누가 필통을 던져 맞았다고 한다", "친구가 종종 툭툭 친다고 한다", "몇몇 아이가 키가 작다고 한다" 등의 사소한 민원 제기에 24살 선생님은 그때마다 "제가 미처 살피지 못했다", "송구스럽다", “제가 전화를 드리겠다”를 반복해서 답해야 했다.

이 학급에서 한 아이가 연필로 다른 아이의 이마에 상처를 내는 일이 있었는데, 피해 학생의 학부모도 아닌 가해 학생의 엄마가 박 선생님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아내 항의를 하고, 가해 학생의 아버지는 학교로 직접 찾아와 항의를 한 게 결정적으로 충격을 준 것 같다. 박 선생님이 개인 전화번호가 노출된 두려움을 호소하자, 학교측은 "전화번호를 얼른 바꾸라"고 할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박 선생님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한 가해 학생의 엄마는 경찰청 수사부서에 근무하는 경위였고, 학교로 찾아왔던 아빠는 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그간 박 선생님의 죽음에 대해 남자친구와 헤어져 '개인사'로 사망한 것이라느니, 학부모가 먼저 전화한 적이 없다느니 등등 사건을 은폐 또는 왜곡하기 급급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박 선생님은 교사 생활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육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선생님으로서 의욕을 갖고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었는데, 그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연필사건'의 가해 학생 학부모 등이 좌절을 시켰다는 점이다.

학부모의 갑질이 비단 서이초뿐이겠는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학부모의 갑질에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분별없는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연필사건'의 가해 학생 학부모 등에 대한 수사는 엄정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더불어 서초경찰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 정황 및 경위에 대해서도 감찰이 요구된다. 그리고 베테랑 교사들도 기피한다는 1학년 담임을 새내기 교사가 2년 연속 맡은 게 스스로 원한 결정이었다는 학교 측의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

본디 부자는 돈 자랑을 하지 않고 많이 배운 이는 티를 내지 않는다. 개똥도 아닌 것들이 돈 자랑을 하고 학벌을 내세운다. 졸렬한 그들은 주로 강자에게 굽신거리고 약자에게 매몰차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 강남에 거주하는 자신이 대단한 줄 아는 몇몇 학부모와 그들의 눈치만 살피는 학교측의 얄팍한 처신이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어했던 꿈많은 24살 여선생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분노가 컸다. 박 선생님의 죽음이 헛되이 않는 일은 우리 산 자의 몫이다.

"임용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발령을 받고 학교로 향하던 날, 얼마나 설레셨을까요? ‘우리 반’을 가꾸느라 또 얼마나 애쓰셨을까요? 이런 선택을 앞두고 자신을 얼마나 탓했을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막막했을지, 결심을 하고서도 얼마나 무서웠을지, 동시에 얼마나 살고 싶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집니다." - 서이초 박 선생님을 보내는 어느 선배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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