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시장 족발집 이야기

박태환 승인 2024.09.22 01:27 | 최종 수정 2024.09.27 15:25 의견 0

족발 자료사진


어느덧 20년도 휠씬 더 된 이야기이다. 당시 어머니는 신정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가끔 족발과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오셨다. 맛있게 먹는 아들과 손녀들을 보시면서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셨다.

그 족발은 우리집 가까이 있는 시장 내 사거리 노점에서 팔고 있었다. 원래는 5000원이었는데, 몇 년 만에 인상해 6000원에 팔고 있단다. 수년 동안 6000원 짜리 족발은 불티나게 팔렸다. 장사가 정말 잘 되었고, 일손이 달리었는지 어느 날부터 여러 사람이 붙어서 족발을 썰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아들과 딸, 사위들이었다. 그들이 교대로 시장을 찾아 어머니 장사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등장한 이후부터 족발 가격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무려 2000원을 올려 8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여전히 장사가 잘되자, 그들은 또 2000원을 올려 10,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불과 2~3년 사이에 6000원에 팔던 족발을 10,000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려려니 하고는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가서 군말 없이 족발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건데 어느 날 찾아가 10,000원을 내미니 2000원을 더 내라고 한다. 또 2,000원을 인상한 것이다.

난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그날도 딸 아들 사위 등 여럿이서 족발을 썰고 있었고, 머리가 희끗해진 아주머니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자식들에게 족발을 써는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아주머니를 향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가게도 없이 고생을 하는 아주머니를 찾아준 울산 시민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장사를 해야지 이렇게 자주 가격을 올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다음 번에 찾아갔더니 10,000원이란다. 다시 가격 인하를 한 건 아니고, 10,000원 짜리 족발과 12,000원 짜리 족발을 같이 팔고 있었다.

오늘 모처럼 신정시장을 찾았다.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수십 건씩 기사를 올리다 보니 어깨가 늘상 아팠다. 수시로 목운동을 하며 그려려니 했는데 진통이 팔까지 내려왔다. 할 수 없이 옛날에 자주 가던 시장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온김에 족발집을 찾았다.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자식들이 12,000원, 14,000원에 팔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족발 가격을 다시 올렸네요" 했더니, 딸인 듯 보이는 여자가 "10년 되었어요!"하고 고함치듯 말한다. 족발을 10,000원씩 받은지가 10년이나 되었기에 2000원을 인상했다는 소리이다. 거짓말이다. 게다가 곁에서 일하던 어떤 여자가 중얼거리듯 "비싸면 안 사면 될 일이지"라고 말한다.

난 어쩔까 망설이다 14,000원 짜리 족발 하나를 골랐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수십 년간 가게도 아니고 노점상을 하면서 돈을 벌어 자식에게 대물림까지 하는 그들이다. 오랫동안 꾸준히 찾아준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없이 여느 장사치와 다름없는 행세를 하고 있다.

참고로 성남시장 칼국수집은 10년 만에 1000원을 인상하면서 그렇게 미안해 했다. 가게를 이어받은 주인 며느리는 손님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돈욕심 부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재료값이 워낙 올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손님이 묻지도 않는데, 미안함을 가득 담은 얼굴로 먼저 말한다.

요새 다른 곳은 칼국수 한 그릇에 10,000원씩 하는데, 그 집은 이제 4000원이다. 가끔 한 번씩 가보면, 종업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을 듯한데, 주인 며느리 얼굴은 항상 미소를 띈채 맑게 살아온 이의 기품이 느껴진다.

저작권자 ⓒ 시사인 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