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장관 ‘카투사 아들 휴가 연장 논란’ 감상법

박태환 승인 2020.09.23 03:19 | 최종 수정 2020.09.24 10:06 의견 0
 

추미애는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웠는데, 3살 무렵에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서 몽땅 털어가는 바람에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손님이 맡긴 옷값을 전부 변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이때 막내동생이 태어나고 언니도 눈병에 걸려 살림이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3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외갓집에 맡겨져 컸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강한 독립심과 반항적 기질,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견해가 있다. 모범생이던 경북여고 시절에는 돈을 밝히는 선생을 보고 교실 문을 박차고 나올 정도로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을 표시했다.

정계 입문이후 추미애의 성격을 잘 드러낸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2001년 7월 5일 밤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모 한정식 집에서 추미애를 비롯해 몇몇 의원이 기자들과 술을 마셨다. 당시 소설가 이문열이 조선일보에 DJ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게 화두에 올랐다. 술에 취한 추미애는 손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이문열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 X 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석했던 모 보수신문 기자가 이를 문제 삼자 “네가 정의감이 있느냐, 비겁한 놈. 사주의 지시로 글을 썼느냐, 이 새끼야!”라고 막말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추미애의 아들 사건에 대해 논할 때는, 추미애가 왜 법무부장관이 되었는지 그 연유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추미애는 지역구 5선 의원으로 당대표까지 지낸 중견 정치인이기 때문에, 일개 장관으로서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에게 시달리기에는 격에 맞지 않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조국의 낙마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조국과 함께 검찰개혁에 나설 거라고 믿었던 윤석열이 반기를 들고 조국을 낙마 시킨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마저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송철호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이 그것이다.

법무부장관 추미애는 문 대통령의 요구에 부응하듯 검찰총장 윤석열을 탈탈 털어버렸다.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검사는 좌천을 시키거나 지방으로 보내버렸다. 보다 못한 미래통합당이 국민의당과 합세해 탄핵을 시도했지만,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미애는 기자들이 보란 듯 폰으로 윤석열 장모사건을 검색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결국 추미애는 윤석열을 기어이 식물 검찰총장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자신의 동의 없이는 윤석열 단독으로 어떤 사건도 좌지우지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윤석열은 지금 장모·아내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추미애의 선처만 기다리는 궁색한 처지이다.

그러자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에서 들고 일어났다. 조중동이 힘을 합세해 '추미애 죽이기'에 돌입한 것이다. 조중동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별문제 없이 넘어간 카투사 복무 아들 휴가 미복귀 문제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추미애가 과욕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조중동이 취재역량을 총동원해 주변을 파헤쳐봤지만, 흠결이라고는 카투사에 복무했던 아들의 휴가 미복귀 문제밖에 찾을 수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 미2사단지역대 소속 카투사로 군 복무했던 추미애의 아들이 병가 휴가 10일을 받고 다시 10일 추가 신청했으나 불허되었음에도 지정된 날짜에 복귀하지 않았다. 당직사병이 아들에게 복귀지시 전화를 거니, 상부에서 휴가연장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단순하디 단순한 문제로 조중동은 수개월째 추미애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 국방부에서 절차상 별문제가 없다고 공식 발표하자, "국방부가 아니라 추방부"라고 비난하며, 표적을 확대해 두 딸을 향해서도 포화를 퍼붓고 있다. 프랑스 유학을 준비 중이던 추미애의 둘째 딸이 비자를 빨리 내 달라고 외교부를 통해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외교부의 해명으로 별 게 없자, 이번에는 큰딸이 운영하는 이태원 식당에서 수백만원 대의 정치자금을 썼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한 번에 수백만원이 아니라 일년에 걸쳐 10만원 수준으로 수십 차례 나누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자 흐지부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추미애는 문재인 정부의 숙원인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완수를 위해 희생양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으로 조국의 대타로 나서서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으로 부터 비난을 자초하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추미애 장관의 카투사 아들 휴가 연장 논란 사건의 본질이다.

 

추미애는 왜 아픈 가족사까지 드러내며 문재인 정부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하는 걸까. 추미애에게는 스스로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있다"고 밝힌 아픈 과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생 친구이자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동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추미애는 삼보일배로 사죄하다 무릎을 다쳐 청문회 때는 다친 부위를 수건으로 싸매고 임하기도 했다.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그 실수이자 과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 세력의 포화를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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